고려 문헌에 등장한 '푸른 물결' 녹파주, 21세기 술독으로 돌아오다

고려 문헌에 등장한 '푸른 물결' 녹파주, 21세기 술독으로 돌아오다

고려 중기 문인의 문집에서 조선 후기 조리서까지 수백 년간 기록에 오른 전통주 녹파주가 농촌진흥청의 복원 연구와 기술 이전을 거쳐 다시 빚어지고 있다. 술빛이 파도처럼 푸르게 보여 '푸를 녹(綠), 물결 파(波), 술 주(酒)'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거울에 비친 푸른 파도처럼 맑다고 해 '경면녹파주(鏡面綠波酒)'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쌀과 누룩으로 빚는 술에 실제로 푸른빛이 돌까 싶지만, 농촌진흥청은 옛 방식대로 빚은 녹파주가 실제로 푸른빛을 띤다고 설명한다.

고려 문집부터 조선 조리서까지

녹파주는 고려시대부터 알려진 술이다. 고려 중기 문신 이규보(1168∼1241)의 문집 '동국이상국집'에 관련 기록이 있고, '사시찬요보'에도 제조법이 실렸다. 조선시대로 오면 기록이 더 많아진다. 15세기 '산가요록'을 비롯해 17세기 장계향이 한글로 쓴 '음식디미방', 18세기 초 홍만선의 '산림경제', 19세기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와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양주방' 등에 제조법이 남아 있다. 수백 년에 걸쳐 여러 사람의 기록에 오른 것으로 보아 꽤 널리 빚어진 술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전기 녹파주 제조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책은 '산가요록'이다. 세종·세조 대 어의(御醫) 전순의가 1450년께 엮은 것으로 알려진 이 책은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조리서로 꼽힌다. 멥쌀 한 말을 곱게 가루 내 푹 찐 다음 끓는 물 세 말을 부어 죽을 쑨다. 식으면 누룩 한 되와 밀가루 다섯 홉을 섞어 항아리에 담는다. 사흘 뒤 찹쌀 두 말을 쪄서 앞서 만든 밑술에 섞어 덧술하고, 술이 맑아질 때까지 기다린다. 밑술과 덧술을 따로 빚는 이양주(二釀酒) 방식으로, 한 번 빚고 마는 술보다 맛과 향이 진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쌀가루를 두 번 익히는 공정의 차이

이 제조법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멥쌀을 다루는 방식이다. 쌀가루를 한 번 찐 뒤 다시 끓는 물로 죽을 쑨다. 끓는 물만 부어도 익을 텐데 굳이 두 번 익힌 셈이다. 농촌진흥청은 이 공정이 술에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직접 시험했다. '산가요록'대로 쌀가루를 찌는 과정을 거친 녹파주는 알코올 도수 14.5%, 당도 23.3브릭스였다. 찌는 과정을 뺀 술은 알코올 도수 12.0%, 당도 26.0브릭스로 나왔다. 찌는 공정을 거친 쪽이 알코올은 2.5%포인트 높고 당도는 2.7브릭스 낮았다. 남은 당이 적고 알코올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발효가 더 진행됐다는 뜻이다. 옛 조리서에 적힌 공정 하나가 발효 결과를 바꾼 것이다.

17세기 '음식디미방'의 녹파주는 조금 다르다. 멥쌀가루를 끓는 물로 개어 누룩을 넣고 밑술을 만든 뒤, 사흘 후 찹쌀로 고두밥을 지어 덧술한다. 그 뒤 20일가량 기다렸다 마신다. 19세기 '규합총서'에도 녹파주가 나온다. 멥쌀가루로 밑술을 빚고 찹쌀을 쪄 덧술하는 구조는 비슷하다. 이 책은 덧술한 지 14일 뒤 술독 안에 불을 켜 보아 꺼지지 않으면 술을 쓰라고 적었다. 발효가 한창일 때는 술독 안에 이산화탄소가 차올라 불이 꺼진다.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건 발효가 잦아들었다는 신호다. 온도계도 측정 기구도 없던 시절, 불꽃 하나로 술이 익었는지 가늠한 것이다. 문헌마다 쌀과 물, 누룩의 양과 발효 기간은 다르지만 멥쌀로 밑술을 빚고 찹쌀로 한 차례 덧술하는 뼈대는 같다.

끊긴 맥, 연구기관 손에서 다시 이어져

이렇게 여러 문헌에 이름을 남긴 녹파주도 어느 순간 술독에서 사라졌다. 녹파주만 겪은 일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주세 제도가 들어서며 집에서 술을 빚는 일이 면허에 묶였고, 해방 뒤에는 양곡 정책으로 술 빚는 데 쌀을 쓰기 어려워지면서 많은 가양주의 맥이 끊겼다.

녹파주를 다시 술독으로 불러낸 곳은 농촌진흥청이었다. 농진청은 고문헌에 기록된 제조법을 연구해 2009년 녹파주를 복원했다. 멥쌀가루와 누룩, 밀가루로 밑술을 빚고 사흘 뒤 찹쌀 고두밥을 넣어 발효하는 방식이다. 복원은 연구실에서 끝나지 않았다. 농진청은 2010년 5월 녹파주 제조기술 특허를 출원했고, 다음 달 경남 함양의 박흥선 명인에게 기술을 이전했다.

박흥선 명인은 함양 개평마을에서 대대로 내려온 가양주 솔송주의 맥을 잇는다. 개평마을은 조선 성리학자 일두(一蠹) 정여창(1450∼1504)이 태어난 곳으로, 지금도 하동 정씨가 모여 산다. 박 명인은 정여창의 16대 손자며느리로 시어머니에게 집안의 술 빚는 법을 배웠다. 2005년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27호로 지정됐고, 경상남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 솔송주 보유자이기도 하다.

문헌 속 술과 오늘의 술

녹파주는 박 명인에게 솔송주와 출발점이 다른 술이다. 솔송주가 가문에서 이어 온 술이라면, 녹파주는 국가 연구기관이 고문헌을 토대로 복원한 기술을 이전받아 빚게 된 술이다. 기술 이전 당시 양조장 상호는 명가원이었다. 문헌 속 녹파주가 복원 연구를 거쳐 실제 양조장에서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한 셈이다. 솔송주는 현재 알코올 도수 15도, 용량 375㎖의 녹파주를 내놓고 있다. 찹쌀과 멥쌀, 누룩 등을 원료로 한 약주다. 농진청의 복원 연구와 기술 이전을 바탕으로 오늘날 양조 환경에 맞춰 상품화한 술이다.

수백 년 전 문헌 속 녹파주와 오늘의 녹파주를 모든 면에서 같은 술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문헌마다 제조법이 다르고, 지금 쓰는 쌀과 누룩, 발효 환경도 예전과 같지 않다. 다만 고려 문인의 문집과 조선의 여러 조리서에 이름을 올린 녹파주는 복원과 기술 이전을 거쳐 다시 빚어지고 있다. 거울에 비친 푸른 물결처럼 맑다고 하여 '경면녹파주'라 불린 술이 오늘 다시 술병에 담기고 있는 사실 자체가 놀답다. 우여곡절 끝에 녹파주를 향유할 수 있는 작금의 현실이 그저 즐거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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